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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 야그(My job story)

상장사 갑질에… ‘할 말’ 못하는 증권사 투자보고서

정부가 개선 나섰지만 구조적 문제 얽혀 쉽지 않을 듯


국민일보 2017-01-25 05:38


[기획] 상장사 갑질에… ‘할 말’ 못하는 증권사 투자보고서 기사의 사진
증권사의 투자보고서는 일반 투자자에게 사실상 ‘교과서’다. 어떤 주식에 투자하는 게 좋은지부터, 얼마에 팔아야 하는지까지 지침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할 말’을 제대로 못 한다는 비난이 거세다. 기업 입장을 대변하느라 목표주가 부풀리기가 성행한다는 불만이 빗발친다. 매도 의견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고, 매수 의견뿐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 당국이 대대적인 수술을 예고했지만 증권시장의 구조적 문제 탓에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각 증권사는 주요 종목의 목표주가를 대폭 내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수술’에 대비하는 차원이다. 금감원은 지난 3일 금융투자협회 내부규정을 개정하는 등 ‘증권사 투자보고서 바로잡기’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목표주가와 실제 주가 사이의 괴리율을 공시하고, 투자보고서를 쓰는 애널리스트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등 전방위에 걸친 개혁 로드맵을 내놓았다. 

그러나 금융투자업계는 금융 당국의 행보에 회의적이다.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다. 특히 투자보고서를 만드는 애널리스트의 ‘독립성’은 이런 문제점을 고스란히 노출한다. 코스피시장에 상장된 대기업은 ‘부정적 전망’을 담은 투자보고서를 금기시한다. 공공연히 증권사를 압박하기도 한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참고인으로 특검 조사를 받은 주진형 전 한화증권 대표는 “(삼성그룹 구조 개편에 불리한 보고서를 내지 못하게) 여러 증권사나 자산운용사에 로비가 있었다”면서 “뉴스가 되는 게 웃길 정도로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었다.

여기에다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 사이에 형성된 ‘갑을 관계’도 투자보고서를 왜곡하는 주범 가운데 하나다. 애널리스트가 받는 보수를 평가하는 기준은 펀드매니저가 관여하는 외부평가에 의존한다. 외부기관에서 주는 ‘베스트 애널리스트 상’에서 투표권은 펀드매니저들이 갖는다. 이렇다 보니 애널리스트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펀드매니저들이 자산을 운용하기 쉽도록 긍정적 전망만 내놓게 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애널리스트들은 평소 펀드매니저들의 술자리에도 불려나가는 등 잘 보이려고 애를 써야 한다”면서 “이런 점이 고쳐지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어렵다”고 했다. 

투자보고서가 대부분 개인투자자를 상대로 무료로 배포되는 상황도 걸림돌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본래 리서치 자료라는 게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에 가까운데 우리나라에선 개인투자자에게 노출이 워낙 높다”며 “비관적 전망을 내놓으면 개인투자자가 직접 협박전화를 하는 일도 다반사”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금감원은 긴 호흡의 수술을 계획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상장사 ‘갑질’ 등을 규제하려면 증권업계에서 제대로 된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면서 “업계 반발이 있겠지만 차근차근 어떤 게 가능한지 논의해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