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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 야그(My job story)

애널리스트(Analyst)!

 

애널리스트라는 직업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직업은 시대에 따라 늘 변한다. 21세기 들어 미래 유망직업을 소개하는 글이나 방송에서 빠지지 않는 직업이 있는데 바로 애널리스트(Analyst)이다. 애널리스트가 어떤 직업이길래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유망하다고 할까? 나는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대우경제연구소와 대우증권 IBK투자증권에서 애널리스트로 근무하면서 제약/바이오기업, 에너지기업 등 많은 기업을 분석하고 그 가치를 평가하여 고객(주식투자자)에게 제공해 왔다.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을 바로 애널리스트, 그것도 증권 애널리스트라고 한다.

 

애널리스트란 조사하고 분석하는 사람(분석자), 즉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조사하고 분석하여 가치를 평가하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제공하는 직업 또는 사람을 말한다. 그렇다면 모든 애널리스트가 다 똑같은 일을 하는가? 모두 분석하고 평가하는 기본적인 일은 같지만 부동산 애널리스트, 증권 애널리스트. 외환 애널리스트 등 분석대상에 따라 다양한 애널리스트가 있다. 이 중에서 유망직업으로서 애널리스트라고 하면 대개 증권회사나 경제연구에 근무하는 증권분석 애널리스트를 말한다.

 

증권 애널리스트는 다시 경제를 분석하거나 주식시장을 예측하여 투자전략을 제시하는 투자분석 애널리스트(Economist, Strategist )와 개별기업의 가치를 분석하여 투자의견과 목표주가 등을 제시하는 기업분석 애널리스트로 나뉘어 진다. 나는 지난 20여년간 기업분석 애널리스트로서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 줌으로써 젊은 독자들이 애널리스트라는 직업과 그 가치를 바르게 이해하고 향후 진로를 선택하는데 있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한다.

 

그럼 애널리스트(이하 기업분석 애널리스트)는 어떤 일을 하는가? 먼저 애널리스트의 역할은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보자. 애널리스트의 하루를 살펴보면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2008 7 18년 반 동안 몸담았던 대우를 떠나 IBK투자증권으로 옮겨 지금은 리서치센터장이라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이전 직장인 대우증권에서의 하루를 소개할까 한다.

 

늦어도 아침 7시경 어김없이 출근해서 신문이나 인터넷 검색, 유료정보사이트 등을 활용하여 국내외 증권시장과 담당섹터나 기업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고 분석하여 모닝미팅을 준비한다. 7시 30 모닝미팅에 참석하여 영업부서 직원들에게 투자정보를 제공(교환)하고 당일 영업지원 스케줄을 점검한다. 30~40분 정도 미팅을 마치고 나면 전화, 메일, 메신저 등을 통해 고객에게 직접 마케팅활동을 전개하고 9 정각 장이 열린 후 잠시 주식시장 상황을 점검한 후 영업지원을 계속하거나 다른 리서치활동을 시작한다.

 

낮 동안은 영업직원(Broker)과 함께 투자자를 직접 방문하여 담당섹터의 주가전망과 투자유망 종목을 제시하는 투자설명회(PT : Presentation)를 실시하거나 정보수집을 위해 담당기업을 직접 방문(단독 또는 고객과 동행)하는 시간이다. 정규 근무시간(8에서 5)에는 영업지원과 정보수집 활동에 대부분 시간을 투입하기 때문에 애널리스트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보고서 작성은 밤시간이나 주말에 할 수 밖에 없다. 아침 7에 출근하여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매일 야근을 하게 되고 주말에도 이틀 중 적어도 하루는 회사에 나와서 일을 해야 하는 고된 직업이지만 스타 애널리스트가 될 경우 두둑한 연봉과 명예로 충분히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쯤 읽으면 애널리스트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애널리스트는 어떤 일을 하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애널리스트의 역할은 펀드매니저, 일반투자자 등 고객의 투자수익률은 극대화하고 위험은 최소화하는데 도움을 주는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소속회사의 이윤창출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좀 더 크게 보면 건전한 자본시장 육성에도 한 몫 하게 된다. 애널리스트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 가공하여 보고서(Report)를 발간한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애널리스트는 직접 투자하는 사람이 아니라 투자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조언자라는 점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가치를 분석하고 그 가치와 주가와의 차이를 밝혀 조언을 한다. 유명 애널리스트의 판단과 의견에 따라 주가가 요동치거나 투자자의 명암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분석력뿐 아니라 윤리성과 준법성 또한 매우 중요한 애널리스트의 덕목이다.

 

애널리스트의 기본자질은 분석력과 통찰력이다. 분석력과 통찰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투자자에게 신뢰감을 주고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질 줄 알때 비로서 훌륭한 애널리스트(Best Analyst)가 될 수 있다. 

 

애널리스트,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사람들은 일생 동안 필연적으로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가 부닥치는 선택은 오늘 옷은 어떤 것을 입을까?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등 사소한 것부터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것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매 순간 순간이 선택이라고 보면 된다. 바닷가 모래알만큼이나 많아 보이는 선택 중에서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선택 중 하나가 바로 직업의 선택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1990년에 대우증권에 입사했다. 당시 운이 좋았는지 삼성생명, 쌍용정유(현재 S-oil), 대우증권 등을 놓고 하나를 골라 잡을 수 있는 여건이 되었고 증권회사가 '자본시장의 꽃'이라는 생각에 대우증권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처음 발령받은 곳은 구미지점이었는데, 당시 본사 주식운용부서(펀드매니저)를 원했던 내 선택에 반한 회사의 선택이었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훗날 내가 애널리스트로 거듭날 수 있게 한 계기였다.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한 당시 상황은 지점영업사원에게는 최악이었다. 한국 주식시장은 1989 4월 사상 최고치를 찍은 후 장기 하락국면에 들어가 있었고 과도한 신용이나 미수거래로 소위 깡통계좌(주가하락으로 원금이 마이너스(-))가 속출한 때였다. 게다가 영업을 잘한다고 해도 인사고과 잘 받는 것이 고작이고 따라 인센티브를 받는 제도도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적성에도 맞지 않는데다 주식시장 마저 매우 좋지 않아 다른 일자리를 기웃거리고 있던 터에 솔깃한 희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세계경영을 기치로 급성장하던 대우그룹의 싱크탱크(Think tank)였던 대우경제연구소가 대우증권 직원을 대상으로 연구원을 뽑는다는 공문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바로 지원했고 운 좋게도 막강한 경쟁률을 뚫고 지점 영업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처음 대우경제연구소에서는 산업조사실에 배치를 받아 ()대우에 대한 컨설팅업무를 담당했는데, 지점에서 1년 넘게 영업을 하다 왔음에도 불구하고 부끄럽게도 바로 옆 기업분석실에 근무하는 애널리스트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몰랐다. 처음에는 경영컨설팅 업무를 첨단이고 폼 나는 직업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컨설턴트로서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준비 없이 시작한데다 매킨지를 비롯한 거대 컨설팅업체가 국내 컨설팅시장을 장악한 상태에서 대우그룹의 우산 속에서 안주하고 있다가는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또 다른 시도를 결정했다. 컨설턴트로서 뜬구름 잡던 2년 반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애널리스트에 대해 알게 되었고 애널리스트에 매료되기에 이르렀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중 애널리스트 몇 명이 기업분석실을 떠나게 되어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진짜 내 의지로 애널리스트를 선택했고 팀장과의 의견 충돌 등을 겪는 등 우여곡절 끝에 기업분석실로 이동하여 제약업종(섹터)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선택이 지금까지 내 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좀 돌아서 제자리를 찾긴 했지만 그 후 애널리스트는 나의 천직이 되었다.

 

애널리스트로서의 첫 출발이 그다지 순조롭지는 않았다. 제약섹터가 너무나 생소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해 약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고 한데다 의약품이나 정부정책과 관련된 용어는 왜 그리 어려운지 두꺼운 영어사전에도 안 나오는 단어가 많았다. 마땅히 물어볼 데도 없고 관련 문헌도 찾아볼 수 없어 일일이 제약회사를 찾아 다니며 다리품을 팔았고 일본 문헌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본에는 잘 정리된 문헌이 많았고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일본의 그것과 너무 비슷했다. 지금은 웬만한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모두 검색할 수 있고 이메일로 쉽게 주고받을 수 있지만 90년대에는 다리품을 팔지 않으면 한발작도 앞서 갈수 없었다.

 

90년대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서야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이 부상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전문지식과 경력을 갖춘 애널리스트에 대한 요구도 커지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새로운 기술과 어려운 용어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인 제약/바이오섹터와 정보기술(IT)섹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때부터 약사나 제약회사 근무경력이 있는 사람이 제약섹터 애널리스트로 입문하는 사례가 급증했고 일부는 시장에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 결국 애널리스트에 대한 대우가 좋아지기 시작한 것 이상으로 애널리스트가 갖추어야 할 조건도 까다로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천직으로 생각한 애널리스트로서 내 자리를 지키는데 머물지 않고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배움을 병행하기로 결정했다. 마침에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약학석사 학위를 주는 특수대학원인 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에 진학해 산업약학을 전공하고 2002년에 약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결코 쉬운 생활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배운 전문지식과 인맥은 아직까지도 빼놓을 수 없는 나의 자산이다.

 

보람 많지만 말 하기 힘든 비애도 있다

한국에서 애널리스트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10년 정도 지났다. 그 전에는 증권회사 조사부 직원이거나 경제연구소 연구원으로 불렸다. 증권회사에 막 들어온 신입사원이 조사부를 미리 알고 지원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그냥 회사의 배치에 따라 애널리스트로서 일했다. 따라서 애널리스트에 대한 대우도 다른 부서 직원과 특별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를 겪고 난 후 강력한 구조조정과 함께 한국 금융시장이 변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이 급부상했고 대우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나는 좀 돌아서 왔지만 어쨌든 내 선택으로 애널리스트가 되었다. 좀 늦게 데뷰했지만 그 전 4년간의 지점영업과 컨설팅 경험은 내 애널리스트 인생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되었다. 애널리스트는 자신이 추천한 회사의 주가가 예상대로 올라 그 주식을 산 고객(투자자)이 수익을 낼 때 뿌듯함을 느낀다. 투자자로부터 직접 또는 영업직원을 통해 칭찬을 듣기도 하지만 평가기관이 실시하는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됨으로써 더 큰 보람을 느끼게 된다. 애널리스트를 시작한 지 2년만에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주간 매일경제가 1996 1월에 처음으로 펀드매니저 설문을 통해 베스트 애널리스트를 뽑았는데, 내가 제약/화장품 섹터 1위를 차지했다. 일단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되면 쉽게 스카우트의 대상으로 노출되고 연봉 등 대우도 많이 달라진다. 물론 베스트 애널리스트 랭킹이 애널리스트의 실력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관관계가 높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내가 IBK투자증권의 리서치센터장으로 부임하여 애널리스트를 채용할 때도 가장 먼저 베스트 애널리스트 랭킹을 참고하여 우리에게 맞는 채용 후보자를 고른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애널리스트로서 살아온 짧지 않은 세월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기억으로 뚜렷이 남아있는 시기는 2004년 하반기부터 이듬해 말까지이다. 1년 반 만에 제약지수는 4배 가까이 올라 제약담당 애널리스트가 각광 받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남들보다 먼저 제약산업의 큰 트렌드 변화(변곡점)를 읽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가파른 고령화와 저성장기를 맞아 제약산업이 GDP 성장률을 상회하기 시작하고 그에 힘입어 제약지수가 10여년만에 사상최고치를 뚫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보수적 성향으로 인해 고추가루(pepperfog)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애널리스트가 갑자기 공격적으로 바뀌자 처음에는 고객들이 다소 혼란스러워 했다. 얼마나 좋으면 저리 광분할까?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거 아냐?. 1,100p 대에서 시작한 제약지수가 가파르게 상승하자 내 주장을 신뢰하는 투자자가 늘었고 그것이 제약주 상승을 가속시켜 급기야 94년에 기록한 의약품지수 사상 최고치 2,070p를 가볍게 돌파하고 3,800p까지 질주하였다. 같은 기간에 한국 주식시장(KOSPI) 50% 정도 오르는데 그쳤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에도 좋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확천금(一攫千金)을 노리는 이들과 같이 숨쉬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금전적인 유혹에 노출될 수 있다. 그런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큰 일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소위 작전세력의 주타겟이었던 제약/바이오주를 오랫동안 분석해온 나로서는 여러 차례 그런 유혹을 받은 기억이 난다.

또한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분석과 의견제시를 저해하는 요소도 있다. 금전적인 유혹보다 훨씬 더 자주 경험하는데 이럴 때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에 염증을 느끼게 된다. 거의 모든 투자자는 무조건 주가는 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애널리스트는 주가를 올리기 위해 바람잡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분명히 고평가된 주식일지라도 애널리스트가 부정적인 의견을 낼 경우 냉혹한 평가와 함께 심할 경우 협박까지 감수해야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먼저 소속회사의 영업직원으로부터 장사 못 해 먹겠다는 질타를 받을 수 있고 분석대상 회사의 출입금지 또는 정보제공 차별 조치도 당할 수 있다.

9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된다. 당시 K제약의 주가는 얼토당토않은 신약개발 루머를 타고 1만원대에서 3만원대까지 짧은 기간에 급등한 상황이었다. 그 때 K제약의 주력제품 약가가 대폭 인하되었고 그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가 나간 날 주가가 하한가로 곤두박질 쳤다. 바로 울고 싶은 놈 뺨 때린 격이었다. 그날은 하루 종일 항의전화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배에 철판을 깔았나? 밤길에 뒤통수 조심해라 등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설이나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애널리스트로서 무엇보다도 더 힘든 비애는 가족과 함께 하거나 개인적인 여가활동을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기를 반복하고 주말까지 반납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애널리스트에게 소원을 물어보면 대부분 아무 생각 없이 잠 한 번 실컷 자 보는 것이거나 가족과 함께 편안한 맘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것이 애널리스트의 경쟁력이다

 

어떻게 오랫동안 애널리스트로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1) 기본에 충실, 2) 폭 넓은 네트웍(Network), 3) 성실과 도전정신(열정), 4) 준법성과 리스크 관리 등이라고 생각한다. 단기 주가움직임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회사의 가치를 분석하고 투자판단을 하는 기본적 분석(Fundamental analysis)에 고집스럽게 집착한 것이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폭넓은 인맥도 애널리스트의 빼놓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담당섹터나 기업에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네트웍(인맥)의 힘을 빌어 해답을 경쟁자보다 쉽고 빠르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Know where). 또한 본인의 주장이나 투자권유가 주식시장에 더 잘 먹히도록 하는 것 또한 네트웍의 힘이다. 나는 제약기획실협의회 특별회원으로서 10년 넘게 활동했고 국내외 제약회사, 바이오기업, 제약/바이오관련 연구기관 및 정보제공업체 임직원 등으로 구성된 제약산업경영연구회의 창립멤버로서 활동하고 있다. 네트웍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열정(성실함과 도전정신)은 애널리스트뿐 아니라 모든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공통된 중요한 덕목이고 준법정신과 리스크 관리는 특히 금융기관 임직원으로서 신뢰를 주는 원천이 된다. 

 

과거에는 자신의 의지보다 우연한 기회에 애널리스트가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미리 준비된 애널리스트가 대세이다. 입사하기 전 학창시절에 미리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증권연수원 등에서 애널리스트 양성과정을 수료하는 등 애널리스트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렇게 준비를 하고서도 2~3년 정도 RA(Research assistant, 애널리스트 보조) 업무를 하면서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RA의 기회 조차 잡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럼 애널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타고난 능력도 있어야 하고 후천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지식도 있을 것이다. 2008년 봄 대우증권에 근무할 때 30여명의 기업분석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애널리스트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기억이 난다. 그 설문내용을 정리해보면 위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애널리스트가 갖추어야 할 기본지식에 대한 물음에서 담당업종 전문성과 재무지식에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고 프리젠테이션 능력(발표력)과 회계지식도 비교적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적합한 성격이란 물음에서는 사교적과 분석적 성격이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었다. 분석적 성격은 당연하지만 사교적 성격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으나 앞에서 언급한 네트웍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 질 것이다. 다음은 애널리스트가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업무에 관한 질문에서는 역시 분석보고서 작성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고 기업탐방(방문)과 프리젠테이션(PT)이 뒤를 이었다. 기업탐방은 보고서 작성을 위한 정보수집 차원에서 PT는 작성한 보고서의 마케팅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리서치활동이다. 정리해보면 애널리스트는 일반적으로 재무, 회계, PT 능력 등을 골고루 갖추어야 하고 담당섹터의 전문성과 트렌드를 읽고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그리고 사교적이고 분석적이며 꼼꼼함까지 갖춘 애널로커(Analoker : Analyst+Broker)로서의 자질이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증권 애널리스트는 경영학과나 경제학과, 통계학과 출신 등 주로 상경계열이나 숫자관련 학과의 전공자들에게 적합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나 최근에는 다양한 전공과 경력을 소유한 애널리스트도 많다. 특히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면 가장 환상적인 학력이고 실제로 현업에서 근무한 경력까지 보태지면 금상첨화(錦上添花)라 하겠다.

21세기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에게 애널리스트라는 나의 천직을 소개하게 되어 기쁘다. 애널리스트는 분명히 도전해볼 만한 미래 유망직업이다. 잘 준비하여 성공에 이른다면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 아직 준비하지 못했다고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강력한 의지와 도전정신으로 무장한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